시간이 만든 삶, 삶이 만든 집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디자인살롱> 강연 리뷰
2025년 12월, 코엑스에서 홈 · 데코테이블페어가 열렸습니다. 다양한 가구와 소품, 트렌드가 전시장 가득 채워져 있어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어요. 이번 페어에서는 전시와 함께 <디자인살롱 서울>이라는 컨퍼런스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2025 디자인살롱 서울
무아공간의 오승욱 대표님 역시 강연자로 참여해 <시간이 만든 삶, 삶이 만든 집 : 변화하는 한국 주거 공간의 미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집을 단순한 인테리어의 결과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흐름과 개인의 삶이 함께 만들어온 구조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디자인살롱 강연 중이신 오승욱 대표님
행사 첫날의 마지막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집중했고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집’이라는 주제가 여전히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럼, 이 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파트는 실패가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 디자인살롱 강의 자료 일부
오늘 한국에서 ‘집’을 떠올리면, 대부분 비슷한 장면을 그리게 됩니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 반복되는 동과 평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은 이 구조 안에서 흘러가고 있죠.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한국에는 약 1,987만 호의 주택이 있다고 해요. 이 가운데 아파트·주상복합·오피스텔 같은 공동주택의 비율은 약 80%. 단독주택이 오히려 ‘특별한 선택’이 된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집은 사실상 아파트를 의미합니다. 이 결과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한 선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오승욱 대표님은 한국의 근대사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이후 빠른 재건이 필요했고,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수용할 주거 형태가 시급했어요.
1970년대에는 도시화율이 50%를 넘으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파트는 반복 가능한 평면과 빠른 시공으로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었습니다. 1958년 종암 아파트부터 지금과 비슷한 형식이 자리 잡았죠. 흥미롭게도 그 평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파트는 잠시 유행한 형태가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주거 시스템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실패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절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그 안에는 당시 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와 생존의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파트를,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가늠하게 해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정확히 이해해야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분명해지니까요.
”
보여주기 위한 집에서, 살아지는 집으로
▲ 디자인살롱 강의 중이신 오승욱 대표님
아파트는 분명 한 시대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고, 우리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잘 사는 사회’가 되었죠.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점점 더 개인화되었어요. 일하는 방식도, 가족의 형태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의미도 달라졌죠. 하지만 집은 여전히 같은 평면, 같은 동선, 같은 쓰임을 전제로 설계됩니다.
이 간극에서 불편이 생깁니다. 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해서 생기는 불편. 보여주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살다 보면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이죠.
“양적 성장이 계속되면, 그 반작용처럼 다른 욕구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방향의 욕망을 품게 되었어요.
정작 자기한테 필요한 집이 아닌,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한 집을 선택하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살아갑니다.
어떤 직장을 가질지, 어떤 삶을 살지, 기준이 점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거죠.
”
무아공간은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꿉니다. 단순히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묻는 것. 집을 꾸미기 전에, 삶을 먼저 들여다보는 이유입니다.
“요즘 우리는 누구보다 ‘나다운 것’,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원합니다.
저는 그 흐름을 ‘건축’,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애정하는 ‘집’이라는 주제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시작은 늘 같았어요. 한 가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부터, 천천히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
”
불편을 정확하게 읽어내면, 좋은 디자인은 따라온다
“더 예뻤으면 좋겠어요.”
“좀 더 넓어 보였으면 좋겠어요.”
집을 바꾸고 싶다는 말은 늘 비슷합니다. 하지만 무아공간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불편과 필요를 먼저 간파하죠. 지금 이 집에서 무엇이 불편한지, 그 불편이 언제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집요하게 살핍니다.
“저는 장사의 본질은 결국, ‘고객의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보다 먼저,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제대로 읽어야 하니까요.
”
고객에게 주거공간을 제시하는 전문가라면 “화장실이 부족해요”, “서재가 필요해요” 같은 말들 속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가족의 구성, 생활 시간대, 역할 분담, 현재 구조가 감당하지 못하는 지점이 담겨 있어요.
무아공간은 이 언어를 생활의 맥락으로 다시 해석합니다. 불편을 정확히 읽어낼수록,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예뻐 보이는 집보다, 내가 살수록 이유를 알게 되는 집. 디자인은 그저 미학적으로 아름다워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불편을 해결하고 필요를 충족해주어야 합니다. 무아공간은 그것을 ‘기능미학’이라고 부릅니다.
“디자인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하이엔드의 새로운 기준, 다용성
코로나 이후 삶은 점점 더 많은 역할을 집 안으로 끌어옵니다. 하지만 집은 쉽게 커질 수 없죠. 이 간극을 메꾸는 키워드가 바로 ‘다용성’이에요.
다용성은 하나의 공간이나 가구, 제품이 다용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공용부의 큰 테이블은 시간대에 따라 함께 밥을 먹는 식탁이 되기도 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홈카페가 되기도 하죠. 하나의 형태이지만, 공간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훨씬 많아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이 단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바로 다용성(多用性)입니다.
‘많을 多’, ‘쓸 用’. 말 그대로 하나를 여러 방식으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이죠.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고, 집을 더 넓히는 건 이제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점점 더 많은 기능과 활동을 공간 안에 담아내야 하죠. 집에서도 넷플릭스를 보고, 일을 하고, 때로는 운동도 하고 싶어지니까요. 하고 싶은 건 계속 늘어나는데, 공간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의 공간, 하나의 제품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에요. 인플레이션과 부동산 상승이 맞물리면서 ‘다용성’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죠.
예전에는 A라는 기능은 A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도, 사물도, 더 이상 하나의 역할만 하지 않아요.
그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보면, 훨씬 더 유연한 해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또 어떤 집에서는 특정 취향을 깊게 반영한 취미 공간이 집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미디어룸이나 레고룸, 홈짐처럼요. 고객의 취미 활동을 기준으로 침실의 위치를 바꾸고, 안방처럼 큰 공간을 과감히 취미를 위한 장소로 재구성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이는 취미가 일상의 부가 요소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축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미디어룸을 따로 만들 만큼 시청각 경험에 대한 니즈가 커지면서, 흡음이 가능한 바닥재처럼 새로운 기능과 제품에 대한 필요도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공간의 변화는 곧 새로운 상품과 기술이 등장할 여지를 만들죠. 이런 선택들은 곧, 고객의 삶을 정확히 읽어낸 결과입니다.
집은 자산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삶의 형태
▲ 디자인살롱 강의 자료 일부
집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총합입니다. 반복된 하루, 익숙한 동선, 무의식적인 습관. 그래서 인테리어는 단순히 구조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삶의 흐름을 다시 정리하는 일에 가까워요.
집은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나를 닮아가고, 무아공간은 그러한 집을 ‘나다운 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집을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집은 곧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아공간이 말하는 '하이엔드'는 결국 이 지점에서 선명해집니다. 화려한 마감이나 비싼 자재가 아니라, 누구에게 왜 필요한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 변해가는 일상을 읽어내고, 작은 불편까지 보듬는 공간-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하이엔드입니다.
마무리하며
▲ 디자인살롱 강의 중이신 오승욱 대표님
오승욱 대표님의 이번 디자인살롱 강연은 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묻게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아파트라는 구조의 역사부터, 획일화된 집의 한계, 그리고 다용성과 기능미학이라는 대안까지 집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단계 넓혀주는 강연이었습니다.
무아공간 웹진은 ‘기능미학’관점에서 가족의 불편과 필요를 탐구하고, 디자인으로 그 해답을 제시하는 공간입니다. 앞으로 무아공간이 만들어갈 나다운 공간과 감각적인 스토리를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