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은 나를 닮아간다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별마당 도서관> 인문학 특강 후기
지난 2026년 9월 23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저녁.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오승욱 대표의 특강 '좋은 집은 나를 닮아간다'가 열렸습니다.
▲ 별마당도서관 공식 홈페이지 제공 이미지
강연은 질문 하나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정말 마음에 드시나요?" 객석에서 손을 든 사람은 서너명.
오승욱 대표는 가볍게 웃으며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말해 현장의 분위기를 풀어갔습니다. 그럼 그날의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 별마당 도서관에서 강연 중인 오승욱 대표
사람은 모두 다른데, 왜 집은 다 비슷할까
대한민국 주택의 79.6%는 공동주택입니다. 대부분이 비슷한 구조의 집에서 살아가는 셈이죠. 그런데 오승욱 대표는 아파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는 실패가 아니라, 빠른 경제 발전 속에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을 품어야 했던 그 시대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다만 아파트는 한 번 지으면 수십 년을 살아야 합니다. 물건은 몇 년 쓰고 새로 사면 되지만, 집은 그렇게 금방 바꿀 수가 없죠. 그사이 삶은 빠르게 달라졌는데 집은 그대로였고, 우리는 몇 평, 얼마짜리인지로 집을 말하게 됐어요. 살기 위한 집보다 보여주기 위한 집이 많아진 겁니다."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좋은 집은 나를 닮아간다' 강의 자료 일부
집이 작아진 게 아니라, 바라는 게 많아졌다
코로나는 집의 역할을 통째로 바꿔놓았습니다. 예전의 집은 먹고, 자고, 아이를 키우는 곳이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도, 학교도, 극장도 갈 수 없던 시기를 지나며 집에는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홈트레이닝이 들어왔습니다. 작은 방을 홈시어터로 꾸미고, 드레스룸을 만들고, 거실에 DJ 부스를 들인 무아공간 고객도 있었죠.
오승욱 대표는 이렇게 수많은 역할을 품게 된 지금의 집을 'N home'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즘 집이 좁게 느껴지시죠? 집이 작아져서가 아니라, 집에 요구하는 역할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운동도 해야 하고, 손님이 오면 술도 한잔해야 하고, 커피 머신도 놓고 싶고, 와인잔도 걸고 싶고, 영화 볼 때는 스크린도 내리고 싶죠. 이제 집은 무한대의 역할을 요구받는 'N home'이 됐습니다."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좋은 집은 나를 닮아간다’ 강의 자료 일부
이 변화는 집의 모습도 바꿔놓았습니다.
"예전에는 인테리어 회사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난 비슷한 집들이 양산됐다면, 이제는 집마다 톤앤매너가 다 달라요. 저희 프로젝트도 같은 게 거의 없을 정도죠. 100명이 살면 100개의 공간이 생겨나는 시대가 온 겁니다. 저는 이게 가장 건강한 상태의 집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유행하는 자재를 똑같이 쓰는 게 아니라, 나를 닮은 개성이 드러날 때 집은 비로소 나를 지켜주는 셸터가 되니까요."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거실에 DJ부스를 들인 청암동B아파트
내 집이 아니어도, 지금의 삶은 내 것
"어차피 이사할 건데, 내 집도 아닌데." 사회초년생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말입니다. 오승욱 대표는 이 말이 쌓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짚었습니다.
"취직하고 혼자 사는 몇 년은 잠깐 머무는 집이라 넘기고, 결혼할 때는 전세금 마련하느라 넘기고, 전셋집에 들어가서는 자가를 사면 그때 꾸미자며 또 넘기죠. 그렇게 한 사람의 15년이 창고 같은 공간에서 흘러갑니다. 하지만 그 시간도 내 인생의 시간이잖아요. 지금 사는 부동산은 내 것이 아닐 수 있어도,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삶은 내 것입니다."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본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된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그가 권한 방법은 소박합니다.
"집 전체를 한 번에 바꾸려고 하면 끝이 없어요. 의자 하나, 협탁 하나부터 내 취향으로 바꿔보세요. 그 의자를 누가 디자인했는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고 들이면 진짜 애착이 생기고, 그 변화가 하나씩 퍼져나갑니다. 저도 서울에서 처음 자취할 때 첫 월급으로 철제 옷장 하나를 샀어요. 거기에 옷을 개어 올려두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죠."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본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된 이미지입니다.
비싼 가구를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취향은 삶의 궤적을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20~30대에는 중고 가구로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죠. 무언가를 사기 전에는 '이 자리에 정말 필요한지, 내가 자주 앉고 쓸지'부터 관찰하라는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쑥스럽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하나.
"천 원짜리 노트 하나 사서, 일주일에 하나씩만 적어보세요. 아침 특정 시간에 들어오는 햇빛, 창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10월의 온도 같은 것들이요. 그렇게 쌓이다 보면 거짓말처럼 반복되는 단어가 생깁니다. 바람이 좋다, 환기가 좋다, 조명이 좋다. 그게 바로 여러분의 취향이에요."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취향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오승욱 대표의 답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는 한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습니다. 아파트에 의자 높이의 평상 같은 '좌식 공간'을 꼭 만들어 달라던 고객이 있었습니다.
"이유를 깊이 여쭤봤더니, 아내분이 어릴 적 어머니가 문방구를 하셨대요. 해가 지면 아빠가 돌아오시는데, 그때까지 문방구 앞 평상에서 언니랑 담요를 덮고 기다렸던 거예요. 저는 이 장면이 한 사람의 취향의 가장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보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먼저 돌아보셨으면 해요."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오승욱 대표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디자인의 원천이 어린 시절, 건축을 하던 아버지가 지은 집의 마당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 부수고 새로 지을까, 고쳐서 살까
강연 후에는 청중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할지, 새로 지을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최근 저희가 주택 리뉴얼 프로젝트를 하나 마쳤는데, 같은 집을 신축했다면 얼마가 들지 후배 건축사들에게 물어봤어요. 리모델링에 5억이 들었다면 신축은 13억 정도, 거의 3배가 든다고 하더라고요. 인테리어까지 제대로 하면 2~3억이 더 들고요. 오래된 주택은 새로 지으면 현행 건축법 때문에 면적이 크게 줄기도 하고요. 추억도 소중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인지, 노후 자금까지 쓰는 건 아닌지 꼭 따져보셔야 합니다."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 별마당 도서관 강연 중이신 오승욱 대표
마무리하며
"인테리어의 본질은 마지막에 보이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집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있어요. 집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삶의 형태입니다."
— 무아공간 오승욱 대표
연휴를 앞둔 저녁,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 질문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집에도 잠시 머물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이야기는 오승욱 대표의 책 『나는 나다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